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문단 편집) === 전개 === [[11월 27일]], 준코의 부모는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납치 3일 후인 [[11월 28일]]에 히로시는 지나가던 나카무라 데쓰오(中村 哲夫, 16~17세)를 비롯한 행인을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하던 중이었다. 히로시는 함께 어울리던 데츠오와 이하라 고이치(伊原 孝一, 소년 F, 15~16세)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내 밤 11시경 일행을 데리고 신지의 집에서 자고 있던 준코 앞에 나타났다. 히로시는 겁을 줄 생각으로 [[감기약]]을 [[각성제]]인 것처럼 일행들과 나눠 먹으며 약에 취한 듯 행동하고 준코의 다리를 잡아 쓰러뜨렸다. 고이치는 쿠션으로 준코의 얼굴을 눌렀으나 준코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신지 부모가 2번이나 현장에 찾아왔는데 첫 번째엔 2층의 소음에 잠을 깬 신지 어머니가 방안을 봤으나 조명이 고장나 바닥의 스탠드만 켜져 있던 상태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2번째는 준코가 비명을 지를 때 아버지가 "방금 비명소리를 들었다. 너희들 뭐하는 거지?"라고 물으며 문 앞까지 찾아왔으나 신지가 "신경 쓰지 마!"라고 쏘아붙이자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제대로 열받은 가해자 일행은 준코의 허벅지와 다리를 중심으로 폭행을 가하고 음부에 불을 붙이면서 [[윤간]]했다.[* 작열통은 인간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이다. 실제로 불고문을 당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미군]]이 "구타도, 물고문도, 칼로 혀를 찌르는 고문도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불은 어머니의 머리를 달리는 버스 바퀴 밑으로 집어넣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을 만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런 성인 남성도 견딜 수 없는 불고문을 어린 여학생인 준코가, 그것도 생식기에 수없이 당했다는 것이다.] 준코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강제로 막기도 했다. 준코는 "도망치지 않을 테니 제발 그만 해 달라"고 애원했으나 폭행과 윤간은 거의 2시간이나 계속됐다. 너무 격렬해서 준코는 걷기 힘들어할 정도로. 신지의 부모가 만류함에도 소년들이 준코를 돌려보내지 않은 원인 중 하나.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0448026814250420564.jpg|width=100%]]}}} || || 사건이 일어난 신지의 자택 2층. 관련 매체 문단에 링크된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상에 나오는 장면의 캡처 사진이다. || 납치 후 5일이 지난 [[11월 30일]]에 준코 부모가 경찰에 신고할까 봐 걱정한 히로시가 제안하여 가해자들은 준코에게 집에 "가출했으니 찾지 마. 친구 집에 있으니 실종 신고는 취소해 줘."란 전화를 먼 지역의 공중전화로 걸도록 강요했다. 5일에 걸쳐 3번 걸게 시키면서 "경찰서도 멀고, 저 차는 야쿠자의 차다. 도주하려고 하면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협박했고 전화를 할 때도 옆에서 감시했다. 그리고 그날 신지 어머니와 인사한 준코는 자신을 "[[사이타마현]]의 고교생"이라고 소개했고 신지 어머니는 준코에게 "늦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준코는 소년들과 2층으로 올라갔고 신지는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낸다."고 말하면서 따라 올라갔다. 5일 뒤인 [[12월 5일]], 신지 방을 청소하다가 쓰레기통에서 [[생리대]]를 발견한 어머니는 2층으로 찾아가 감시 담당인 야스시와 함께 있던 준코에게 "왜 집에 돌아가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준코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준코를 [[가출소녀]]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물었지만 준코는 "[[사이타마현]]에 사는 고교 3학년 학생이고, 취직이 결정됐다"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어서 돌아가라"고 말했다. 같이 있던 야스시도 "그래,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해 식사를 시킨 뒤 준코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분위기가 됐다. 식사 도중 신지와 아버지가 돌아와 신지에게 "여자친구인가? 나에게도 소개해 주렴."이라고 말을 걸었으나 묵살당하고 준코는 다시 소년들에게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가게 됐다. 신지의 가족들도 낯선 소녀가 들락날락하는 걸 보고 신경이 곤두서 다음 날에 다시 찾아와 "이 집엔 남자가 2명(미나토 신지와 그 형)이나 있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거지?", "여긴 그 [[야쿠자]] 같은 것들(미야노 히로시와 오구라 유즈루)도 있으니 얼른 돌아가렴."이라고 말을 걸었으나 준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얼른 돌아가자"며 준코의 가방과 소지품을 들고 내려왔지만 준코는 가해자들이 두려워 2층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준코 가방에서 나온 집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아들에게 구타당할 것을 염려해 시부모의 집으로 찾아가 준코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지 어머니가 "댁에 후루타 준코라는 딸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준코 어머니는 "지금은 준코가 집에 없습니다. 누구십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신지 어머니는 주저하다가 가짜 이름을 대고 끊어 버렸다. 가짜 이름을 토대로 수사했기에 준코 부모는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다시 자택으로 돌아온 신지 어머니는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준코와 이야기하는 걸 목격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1년에 몇 번이었다고 하지만 아들들이 자기가 해야 할 최소한의 집안일조차 안 하면 어머니는 술에 만취해 퇴근한 아버지에게 이를 알렸고 아버지는 아들들을 깨워 때렸다고 한다. 도망치면 쫓아오면서 뒤통수를 때렸고 집 근처 공터에서 상의를 벗게 하고 달리게 한 적도 있었지만 이런 사정이 있었어도 절대 신지의 여러 범죄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런 학대가 신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게 신지가 성장해 중학생이 되면서 체력이 강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면서 아버지의 폭력은 완전히 멈췄고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멈추는 시점부터 신지의 가정폭력이 시작됐다고 한다. 소년들은 주범들이 나간 사이에 신지 아버지가 들어와 준코를 희롱하거나 겁탈한 적이 많다고 주장했다. 신지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부정했고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럼 돌아가기로 한 거지? 어머니가 걱정하시니 얼른 집에 돌아간다고 전화하거라." >"괜찮아요. 전에도 전화했으니까." >"그럼 그쪽까지 데려다 줄게." >"혼자서 돌아갈 수 있어요..." >"택시비 가지고 있니? 내 줄까?" >"있어요. 괜찮아요." >"그럼 곧장 돌아가렴."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관문으로 나서는 준코 앞에 (미나토 고지湊恒治, [[1972년]] 1월 21일생으로 당시 16세, 현재 [age(1972-01-21)]세)[* 신지와 동갑이지만 [[빠른 생일]]이라 형이다. 11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평소 가해자 소년들에게 잡혀 살고 있었다.]과 유즈루가 대기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준코를 근처 공원으로 데려가 귀가시킬지 말지 상의했다.미나토 고지는 최대한 귀가시키자는 쪽으로 얘기했지만 결국 준코는 못 풀려났다. 준코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제발 집에 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를 다시 집에 가두기로 결정한 그들은 신지 부모에게 들키지 않도록 이들이 자는 틈을 타 준코에게 건물 옆 전봇대를 타고 창문을 통해 신지 방으로 올라가도록 시켰다. 당시 준코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지만 폭행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신지는 어머니가 준코네 집에 전화한 사실을 알아채고 몇 시간동안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 시점에서 신지 부모는 준코가 집에 돌아갔다고 생각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소년들은 준코를 풀어 줄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이때까지 준코의 돈으로 옷을 사서 갈아입히거나 음식을 먹이고 생필품을 사 주는 등의 행동을 했다. 그러나 감금이 지속되고 준코가 하루 18시간 이상 폭행 및 성적 고문을 당해 상처가 심해지면서 그런 것마저도 사라졌다. 납치 약 한 달째인 12월 하순까진 [[컵라면]], [[빵]], [[우유]], [[계란]] 등을 고지가 먹였지만 이후부터 쇠약해져 고작 하루에 우유 1잔만을 먹을 수 있었다. 옆방에 있던 고지는 이후에도 소년들이 없을 때 한 번씩 준코를 도와주긴 했지만 상술한 것처럼 동생 일행의 폭력에 잡혀 살았기 때문에 사건이 드러날 때까지 두려움이 있었는지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 신지 어머니는 준코가 소년들과 식후 TV를 보거나 같이 [[패밀리 컴퓨터]] [[대전 격투 게임]]도 해서 서로 사이가 좋은 줄 알고 있었다. "준코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에, C의 불량한 친구 중 하나로 생각했다"고 증언했으나 담배는 불량배들의 강요로 피운 것이었다. 초반엔 준코가 가해자들의 지시에 잘 따랐고 11월 말까진 폭행 및 가혹행위의 강도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서 잘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준코가 방 밖으로 나갈 땐 반드시 가해자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큐멘터리에도 초반엔 준코와 가해자들이 게임하며 함께 웃는 장면이 나온다.] 다음 날인 [[12월 7일]]에 준코는 가해자 소년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몰래 1층에 내려와 신고했지만 인기척을 느낀 히로시에게 들켰다.[* 집 밖으로 탈출하면 되지만 "도망치면 [[야쿠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란 히로시의 협박이 떠올라 전화기로 향한 모양. 실제로 히로시는 "이때 준코가 짐을 싸 놓고 옷도 [[교복]]으로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강제로 전화가 끊기자 경찰은 역추적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소년들은 "장난전화였다"고 무마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히로시는 고함을 지르면서 자고 있던 다른 소년들을 깨워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냐"고 물컵을 집어 던지는 등 광분하여 호통쳤다. 신고한 것도 화나는데 히로시에게 혼나기까지 해서 유즈루, 신지, 야스시도 격분했다. 준코는 소년들에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것이 준코가 방 밖에서 한 마지막 행동이 됐다. 이때부터 준코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소년들에 의해 아래에 서술된 가혹행위들이 시작되었다. 특히 오구라 유즈루는 이때부터 가장 집요하고 혹독하게 준코를 구타하고 고문했다. 자기가 밖으로 나가기 전 준코에게 매우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게 한 뒤 소년들이 외출 후 돌아와서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무자비한 폭행으로 응수했다. 나체로 매달아 놓고 복부를 구타하는 건 일상이었다. 일체 저항할 수 없도록 턱과 팔, 무릎을 탈구시키고 관절을 부러뜨리고 가위로 아킬레스건을 절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유즈루의 이 만행은 신지의 집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되어 남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